
소크라테스 포함 세계적으로 '성인(聖人)' 혹은'4대 성인'이라 불리는 인물들은 인류 역사에 깊은 영적, 도덕적 가치를 남긴 분들입니다. 보통 예수, 석가모니, 공자, 소크라테스입니다. 오늘 소개할 책은 소크라테스의 소크라테스의 변명 [크리톤,파이돈,향연]을 소개할까 합니다. 무슨내용인지 처음에는 어리둥절 해서 대충보다가 치워놨었는데 두번째보니 조금 알게 되더군요. 청년들을 선동한다는 이름으로 사형을 선고받고 오늘날로 표현하면 구치소에서 나눈 대화였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왜 많은 친구들이 슬퍼하며 돈 걱정은 하지말고 도망가서 숨어있으라는 제의를 물리쳤을까요?
친구들은 소크라테스를 잃는것이 싫어 계속 설득을 하지만, 결국 친구들이 설득을 당하는 대화를 읽으면서 설득당하지 않을 사람이 없겠구나!하고 아~ 신음이 저절로 나오더군요.
소크라테스는 본인이 출판한 책은 하나도 없다고 합니다. 이책도 그의 제자 플라톤이 집필해서 세상에 나오게 되었죠.
소크라테스가 없었다면 플라톤을 우리는 책으로 만날수 없었을지 모릅니다. 이책을 보면서
소크라테스의 대화법을 배우고 실천하고 이해해봅시다. 참고로 이책을 보면서 소크라테스의 아내는 악처라고 들었는데
그게 아니었던것 같은 느낌같은 느낌은 저는 받았습니다.
서양 철학의 거대한 뿌리인 소크라테스의 생애와 그 가르침을 세상에 퍼뜨린 대표 제자들에 대해 정리해 드립니다.
1. 소크라테스의 출생과 배경
- 출생 시기: 기원전 470년경 (고대 그리스 아테네)
- 가족 배경: 아버지는 조각가(석공)였고, 어머니는 산파(아기 받는 일을 돕는 사람)였습니다.
- 성장 과정: 소크라테스는 부유한 집안은 아니었으나 시민으로서의 의무를 다하며 전쟁에도 참전했던 강인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부모님의 직업에서 영감을 얻어, "지식을 조각하듯 다듬고, 산파처럼 지혜의 탄생을 돕는" 자신만의 독특한 철학 방법론(산파술)을 정립했습니다.
2. 소크라테스의 '위대한 제자들'
소크라테스는 직접 글을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가 아는 그의 모습은 대부분 제자들의 기록을 통해 전해집니다.
가. 플라톤 (Plato) - "철학의 계승자"
가장 대표적인 제자로, 스승의 죽음 이후 소크라테스의 대화들을 기록한 『대화편』을 남겼습니다. 소크라테스의 사상을 체계화하여 서양 철학의 뼈대를 세웠으며, 자신의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에게 그 지혜를 물려주었습니다.
나. 크세노폰 (Xenophon) - "실천적 기록가"
군인이자 역사가였던 그는 플라톤과는 또 다른 관점에서 소크라테스를 기록했습니다. 플라톤이 스승을 심오한 철학자로 묘사했다면, 크세노폰은 실생활에서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현명한 스승으로서의 소크라테스를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3.소크라테스의 죽음은 인류 역사상 가장 드라마틱하고 논쟁적인 사건 중 하나입니다. 그가 왜 독배를 마셔야 했는지, 그 극적인 배경
지혜의 순교자: 소크라테스는 왜 독배를 마셨는가?
가. 아테네의 눈엣가시가 된 거리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아테네 거리에서 권력자들과 청년들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며 그들의 무지를 폭로했습니다. 스스로 '아테네라는 거대한 말에 붙어 잠을 깨우는 등애'라고 칭하며 사회의 각성을 촉구했지만, 이는 기득권층에게 큰 분노와 반감을 샀습니다. 결국 그는 정치적 선동의 표적이 되어 법정에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40단어)
나. 청년을 타락시키고 신을 부정했다는 죄명
그에게 씌워진 공식적인 죄목은 '아테네가 믿는 신을 부정하고 새로운 신을 도입했다'는 것과 '청년들을 타락시켰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표면적인 이유일 뿐, 실제로는 그의 날카로운 비판이 체제를 위협한다고 느낀 보수 세력의 모함이었습니다. 진리를 향한 그의 거침없는 목소리는 당시 혼란스러웠던 아테네 정치 상황 속에서 위험한 독설로 치부되었습니다. (40단어)
다. 죽음 앞에서도 굽히지 않은 철학적 신념
재판 과정에서 소크라테스는 비굴하게 목숨을 구걸하거나 망명을 선택할 기회가 충분히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고 당당하게 변론을 펼쳤으며, 유죄 판결 이후에도 법과 질서를 존중하며 탈출 제의를 거절했습니다.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처럼, 그는 죽음을 통해 자신의 철학적 정당성을 증명하고 진정한 자유를 선택하는 길을 걸었습니다. (40단어)
라. 독배를 든 성인, 인류의 양심을 깨우다
사랑하는 제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는 담담하게 독배를 마시고 생을 마감했습니다. 비록 육체는 사라졌지만, 죽음으로 완성된 그의 철학은 제자 플라톤을 통해 서양 문명의 거대한 뿌리가 되었습니다. 부당한 권력에 굴복하지 않고 끝까지 진리를 수호했던 그의 마지막 모습은, 오늘날 우리에게 참된 용기와 정의가 무엇인지 끊임없이 묻고 있습니다. (40단어)
4.소크라테스의 삶을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는 '성찰'과 '진리 탐구'입니다. 그는 단순히 지식을 쌓는 것을 넘어,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훌륭한 삶(Arete, 덕)'을 살 수 있는지 끊임없이 질문하며 평생을 보냈습니다.
가. "검토되지 않은 삶은 살 가치가 없다"
소크라테스의 가장 유명한 신념 중 하나입니다. 그는 사람들이 당연하다고 믿는 관습, 도덕, 가치관에 대해 "그것이 정말 옳은가?"라고 끊임없이 되물었습니다.
- 무지의 자각: 자신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무지의 지)이 지혜의 시작이라고 믿었습니다.
- 산파술: 대화를 통해 상대방이 스스로 모순을 깨닫고 진리에 도달하도록 돕는 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여겼습니다.
나. 영혼의 돌봄 (Soul-care)
그는 육체적인 쾌락이나 부, 명예보다 영혼의 상태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 그는 시민들에게 "돈이나 명성을 쌓는 일보다 영혼을 최대한 훌륭하게 만드는 일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설득하며 다녔습니다.
- 그에게 '덕(Virtue)'은 곧 '지식'이었으며, 무엇이 진정으로 선한 것인지 안다면 인간은 결코 악을 행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다. 법과 공동체에 대한 책임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철학적 신념을 지키기 위해 죽음마저 받아들였습니다.
- 불경죄와 청년들을 타락시켰다는 혐의로 사형 판결을 받았을 때, 친구들의 탈옥 권유를 거절했습니다.
- 그는 자신이 평생 혜택을 입고 살아온 공동체의 법과 질서를 존중하는 것이 철학자로서의 마지막 도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요약하자면
소크라테스는 '진실하게 사는 법'을 찾기 위해 살았습니다. 그는 안락한 삶 대신 거리에서 사람들과 논쟁하며 진리를 깨우치는 고단한 길을 택했고, 결국 자신의 철학을 완성하기 위해 독배를 마셨습니다.
5.소크라테스를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내용인 먼저 '산파술'의 구체적인 과정과 원리를 살펴보고, 당시 그와 대립했던 '소피스트'들.
가. 산파술(Socratic Method)의 3단계
소크라테스의 어머니가 산파(아이 낳는 것을 돕는 사람)였던 것에 비유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지식을 직접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이미 가진 '진리'를 스스로 낳을 수 있게 도와주는 방식입니다.
- 반어(Irony) 단계: 상대방이 안다고 자부하는 개념(예: 정의, 용기)에 대해 질문을 던집니다. 상대방의 답변에서 논리적 모순을 찾아내어, 결국 스스로 '나는 사실 아무것도 모른다(무지의 자각)'는 상태에 이르게 합니다.
- 산파(Midwifery) 단계: 상대방이 혼란에 빠졌을 때, 적절한 유도 질문을 통해 올바른 방향으로 사고를 이끕니다.
- 보편적 정의 도달: 대화를 통해 마침내 흔들리지 않는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진리를 스스로 깨닫게 합니다.
"소크라테스의 어머니가 산파였기에 그가 질문을 통해 지혜의 탄생을 도왔다는 점은, 현대의 코칭(Coaching) 기법과 매우 닮아 있습니다."
나. 소크라테스 vs 소피스트 (차이점 비교)
당시 '지혜로운 사람'이라 불리던 소피스트들과 소크라테스는 겉보기엔 비슷했지만, 추구하는 가치는 정반대였습니다.
| 구분 | 소크라테스 | 소피스트 (Sophists) |
| 진리의 성격 | 절대적·보편적 (누구에게나 참인 진리) | 상대적·주관적 ("인간은 만물의 척도") |
| 교육 목적 | 영혼의 수련, 도덕적 삶 | 입신양명, 설득의 기술(수사학) |
| 방법론 | 대화와 질문 (산파술) | 일방적 강연과 변론 |
| 비용 | 무료 (진리는 사고팔 수 없음) | 고액의 수업료 (지식의 상품화) |
왜 소크라테스는 소피스트를 경계했을까?
소피스트들은 "진리는 사람마다 상황마다 다르다"고 주장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이런 상대주의가 사회의 도덕적 기준을 무너뜨린다고 보았습니다.
그는 궤변으로 남을 이기는 법을 가르치기보다, '무엇이 진짜 옳은 것인가'를 함께 고민하는 것이 철학자의 사명이라고 믿었습니다.
6.소크라테스가 뿌린 '질문'의 씨앗은 제자 플라톤을 통해 거대한 '철학 체계'로 꽃을 피웠습니다. 소크라테스의 마지막 순간과 플라톤의 사상적 발전을 차례대로 짚어보겠습니다.
가. 소크라테스의 마지막 유언: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닭 한 마리를..."
소크라테스는 기원전 399년, 독배를 마시고 숨을 거두기 직전 친구 크리톤에게 예상치 못한 마지막 말을 남겼습니다.
"크리톤, 내가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닭 한 마리를 빚졌네. 잊지 말고 꼭 갚아주게."
이 말은 단순한 채무 이행 이상의 깊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당시 아스클레피오스는 '의술의 신'이었고, 병이 나은 사람들은 감사의 의미로 그에게 닭을 제물로 바쳤습니다.
- 해석: 소크라테스는 육체에 갇혀 있던 자신의 영혼이 죽음을 통해 비로소 '치유'되고 자유로워진다고 믿었습니다. 즉, 죽음은 삶이라는 병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철학적 확신을 마지막 농담 같은 진담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나. 플라톤: 스승의 '정의'를 '이데아'로 확장하다
플라톤은 스승의 억울한 죽음을 목격한 뒤, "왜 정의로운 사람이 죽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평생 매달렸습니다. 그는 소크라테스의 대화법을 넘어 다음과 같은 핵심 사상을 정립했습니다.
이데아론 (Theory of Forms)
소크라테스가 "정의란 무엇인가?"라고 물었다면, 플라톤은 "정의의 완벽한 본질(이데아)은 현실 너머에 존재한다"고 답했습니다.
- 우리가 눈으로 보는 현실은 변하는 '그림자'일 뿐이며, 변하지 않는 영원한 진리의 세계인 이데아(Idea)가 진짜 실재라고 보았습니다.
철인 통치론 (Philosopher King)
스승을 죽인 '우매한 대중'의 민주주의에 실망한 플라톤은, 지혜로운 철학자가 국가를 다스려야 한다는 '철인 정치'를 주장했습니다.
- 국가론: 인간의 영혼이 지혜, 기개, 절제로 조화를 이루어야 하듯, 국가도 통치자(지혜), 방위자(용기), 생산자(절제) 계급이 각자의 역할을 다할 때 비로소 '정의'가 실현된다고 보았습니다.
다. 요약: 스승과 제자의 차이
| 구분 | 소크라테스 (Socrates) | 플라톤 (Plato) |
| 중심 주제 | 윤리적 실천, 인간의 삶 | 형이상학, 국가 체제, 이데아 |
| 태도 |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겸손) | "진리는 이데아의 세계에 있다" (확신) |
| 철학의 장소 | 아고라 광장 (거리의 철학) | 아카데메이아 (학문의 전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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